본문 바로가기

생각을 말하다.

김훈의 서재는 막장이다..

 

 

김훈의 서재는 막장이다..

 

이곳은 도구가 있는 막장입니다






여기는 내 서재라기보다는 막장이에요. 막장. 광부가 탄광 맨 끝까지 들어간 데를 막장이라고 그러잖아요.

광부는 갱도의 가장 깊은 자리인 막장에서 곡괭이를 휘둘러서 석탄을 캐지요.
저는 서재에 책이 별로 없어요. 필요한 책만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신간 서적의 표지나 목차를 보면, 읽어야 될 책인지 아닌지, 시급히 읽어야 할 책인지 미뤄두었다 두어 달 후에 읽어야 할 책인지 판단할 수가 있지요. 이런 판단은 거의 틀린 적이 없어요. 그래서 많은 책을 점을 찍어놓고 모아두었다 한꺼번에 읽고, 그 읽은 책의 대부분을 버리는 것이지요.
특별한 애착을 갖고 그 책들을 쌓아놓거나 분류하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내가 필요한 책은 자료나 사전, 일종의 일을 하기 위한 도구에요. 광부의 장비가 곡괭이나 삽, 플래시 그런 것이듯 이 방에는 나의 도구들이 있어요. 여기 있는 책은 몇 번인지 모르겠는데 많이 읽어서, 찾고 싶은 대목은 힘들이지 않고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김훈의 도구, 사전


저는 각종 언어 영어, 독일어, 한문, 국어사전과 우리나라의 여러 법전을 가지고 있지요. 한문 사전을 주로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여가가 있을 때는 한자의 글자를 찾아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일도 있었어요.
책을 많이 읽고, 책과 밀착됨으로써 만들어낼 수 있는 문장이 있겠지만, 나는 한국어로 문장을 쓰려면 외국어, 특히 한문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어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합리적, 과학적이라고는 하지만, 독어나 영어, 한문이 갖는 개념적 명석성은 갖추지 못했어요. 우리나라의 문장도 좋은 문장이지요.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고독은 독어로 Einsamkeit 에요. <홀로 있다>라는 수리적 개념이지.
우리말로 '고독'이라면, '쓸쓸해요'라는 정서가 개입되지만, 독어는 정서가 개입하지 않지.
단독자의 모습을 딱 보여주는 거야. 이것은 한국어와는 참 다른 부분이이에요.




독서가 아닌 놀이


또 내가 아주 좋아하는 책은 이런 거에요. <소방서>...... 타는 불길 안에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 들어가서 불을 끄고 데리고 나와야 하잖아요. 그게 인간 사회의 마땅한 도리지요. 소방서에는 불길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써 놓은 거에요. 이런 책들은 아무도 안보겠지, 나만 보겠지. 중장비를 어떻게 작동시키는지에 관한 책도 결국은 기계가 이렇게 맞물려서 인간의 노동하는 육체가 어떻게 작업하는지를 써놓은 것이에요. 인간을 이해하려는 방법이죠. 항해술도 있고, 항공기 조정술은 봐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나는 이게 독서가 아니고, 그냥 놀이야 놀이. 소설 쓰는 사람이 말이야……



책 속의 길과 세상의 길을 연결시키지 못하면...


자꾸만 사람들이 책을 읽으라, 책을 읽으라 하잖아요. 그게 틀린 말은 아닌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근사록>이라는 책을 보면 ‘공자의 논어를 읽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는 없다.’ 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니 다독이냐 정독이냐, 일 년에 몇 권을 읽느냐, 이런 것은 별 의미 없는 것이지요. 책을 읽는다는 것보다도 그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나 자신을 어떻게 개조시키느냐는 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죠. 책에 의해서 자기 생각이 바뀌거나 개조될 수 없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 없는 거죠.
책은, 우리가 모든 세상과 직접 관계해서 터득하고 경험의 결과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 보조적인 수단으로 필요한 것이에요. 세상을 아는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인 것이지요.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그러는데, 내가 보니까 책 속에는 길이 없어요. 길은 세상에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책을 읽더라도, 책 속에 있다는 그 길을 세상의 길과 연결을 시켜서, 책 속의 길을 세상의 길로 뻗어 나오게끔 하지 않는다면 그 독서는 무의미한 거라고 생각해요.



책과 그림, 문화를 받아들이는 통로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독서의 가치를 폄하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제가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그럴 거에요. 나는 책을 매우 많이 읽은 사람입니다. 우리 시대, 내 또래 사람들은 책을 지금 젊은이보다 많이 읽었을 거에요.

그때는 영화도 시원한 게 없고. 컴퓨터도 없었죠. 음악도 뽕짝과 군가가 전부였어요. 그 시대는 가난하고 참 빈곤하고 지금처럼 다양하지 못한 시대였는데, 지금보다 훨씬 좋은 점도 있었어요. 책과 그림(미술) 이외에는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통로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죠. 책과 그림으로 문화와 미의식을 받아들였어요. 이것은 상당히 고급인 인문주의를 받아들였다는 것이거든요. 그것이 우리들의 바탕이 되었다고 봅니다.



<논어>를 읽는 여생




앞으로는 자꾸 새 것을 읽지를 말고 옛날에 읽은 책을 다시 읽으려고 그래요.

<장자>, <논어>, <사기> 같은 것을 다시 읽어야 해요. 왜냐하면 내가 여생이 얼마 안 남았잖아. 새 책을 따라가기보다는 고전을 읽으려고 해요.